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대구(大邱)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대구지역에서 계성학교(啓星學校), 대구고보(大邱高普), 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 성경학교(聖經學校) 학생들은 비밀리에 제휴하여 3월 8일 오후 1시 서문 외 시장에서 공동궐기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8일 아침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유인물이 도청을 비롯한 여러 곳에 뿌려졌다. 계성학교 학생 100명, 성경학교 학생 20명, 신명여학교 학생 50명을 시장 근처에서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오후 3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태극기가 배포되면서 독립만세시위는 시작되었다. 학생과 군경은 가두에서 공방전을 벌였고 그 사이 군중들이 합류해 시위대열은 약 1,0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열이 종로통을 지나 달성 군청이 있는 지점까지 진출하였을 때, 대구 80연대의 병력이 출동하여 총기로 탄압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 1백 57명이 검거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신태근은 1919년 5월 31 대구복심법원,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2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35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권 270~271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4. 18)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5.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66, 12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