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원 횡성(橫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27일 횡성군(橫城郡) 횡성면(橫城面) 횡성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횡성 천도교회 봉훈(奉訓)으로 교인들을 이끌고 있었던 신재근은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조선독립선언과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3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장도훈(張道勳)에게 태극기 및 독립선언서 구입 자금으로 3원을 주었다. 장도훈은 이것을 가지고 3월 11, 12일경 경성에서 태극기 한 폭, 종이로 만든 태극기 20매 및 독립선언서 40매를 구입하고 3월 26일 돌아왔다.
장도훈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구입하여 고향에 돌아오자 신재근은 이것을 향리인 영영포리(永永浦里)를 비롯하여 횡성면 일대에 배포하였다. 또 강만형은 원주 소초면 지역에, 안경춘(安敬春)과 김인경(金麟卿) 등은 정곡과 갑천(甲川)·둔내면(屯內面) 등지에 각각 배포하였다.
3월 27일 신재근과 장도훈은 횡성시장에서 윤태환(尹泰煥)에게 태극기를 주고, 이를 휘두르며 장꾼 300여 명에게 태극기 및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본 경찰과 원주에서 파견된 기마병 7명에 의해 시위군중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신재근은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953∼954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4輯 55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