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4월 2일 충청북도 진천군에서도 윤병한(尹炳漢)이 주도하여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광혜원리(廣惠院里) 주민이 공동으로 야산에 나무를 심으러 가는 것을 기회로 삼았다. 윤병한은 야산에 모인 주민들에게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선동하면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크게 선창하였다. 이때 신달용은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산을 내려와 거리를 행진하며 만승면사무소에 이르러 만세시위를 벌였다. 신달용은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에 돌을 던지는 등 강력한 항일의지를 보여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1919. 5. 13)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