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보산면(寶山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4월 7일 신관식은 보산면 운천리(雲川里)에서 조영(趙榮)등 300여 명과 만세시위를 벌였다. 다음 날인 8일 남천의 헌병분견소 헌병과 헌병보조원들이 신관식이 살고 있는 산막리(山幕里)로 찾아왔다. 산막리는 30여 호의 작은 산촌마을이었다. 이들 헌병들은 동민들을 모두 불러놓고 운천리 만세시위 참가 여부를 조사하면서 '이후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겠느냐?'고 다그쳤다. 이에 동민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겠다'고 외치자, 화가 난 헌병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 모두 총살한다고 엄포를 놓으며 동민들을 향해 총을 마구 쏘면서 폭행을 하였다. 이때 조백선(趙伯善)은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김낙천(金洛天)은 팔굽을 맞아 쓰러지는 등 2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에 동민들은 헌병들에게 저항하며 폭행을 가하였다.
이날 체포된 신관식은 1919년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보안법 위반,상해,살인미수로 징역 2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611~61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46~2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