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영덕군(盈德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신경동은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寧海面) 장날, 성내리(城內里)에서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장을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해산을 요구하는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순사 등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였고 총기, 탄약, 서류를 파기하였다. 이어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영해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건물과 비품을 파괴하고 문서를 파기하였다. 급보를 접한 영덕경찰서장 등 4명이 현장에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대는 기와장과 돌을 던지고 곤봉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 서장 등이 본서로 돌아가려 하자 군중들은 서장 일행을 포위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칼과 총기를 빼앗고 제복과 모자를 찢어버리는 등 결렬한 항쟁을 계속하였다. 3월 19일까지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신경동은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손괴·기물손괴·공문서훼기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7. 1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426~43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376~13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