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김해(金海)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 김해군 김해읍 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2월 23일 이갑성(李甲成)이 마산으로 내려와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립 창신학교 교사 임학찬(任學瓚)을 비롯한 유지 몇 사람에게 3·1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리고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세브란스의전 학생 배동석(裵東奭)이 김해로 내려와 송상진을 비롯한 임학찬·배덕수(裵德秀) 등과 협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만세운동이 추진되었다.
3월 30일 밤 10시에 주동자 7명이 김해읍내의 중앙 거리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던 중 몇몇 주동자들이 붙잡혔다.
이때 검거를 피한 송상진은 4월 2일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거사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4월 1일 밤에 격문을 붙여 동지들을 규합하였으며, 의용대도 조직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2일 오후 4시경, 송상진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시위군중도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은 재향군인을 비롯한 일인 상인·불량배들까지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시위군중을 탄압하였다. 이때 송상진은 코에 파열상을 입고 주동자 5명과 함께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191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5. 30)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22∼1223面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94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