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북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주재소 등을 습격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임북면 계곡동(桂谷洞)의 유연성(柳淵成)은 유동수(柳東洙), 이강욱(李康郁) 등 7명을 동지로 규합하고 3월 21일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시위 군중 동원 계획을 수립하였다. 3월 21일 유연성 등은 일찍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주동 인물들이 책임진 대다수의 동민들도 모두 모여 들었다. 오후 1시경 1,5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송병영도 이에 동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주재소 경찰들이 칼을 빼들고 시위를 진압하려 하자, 이에 격앙한 군중들은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주재소 앞에서 김은수가 주재소를 습격,파괴할 것을 외치며 앞장서 주재소로 들어가자, 송병영도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 건물과 비품, 서류 등을 파괴하였다.
이 거사의 주동 인물로 체포된 송병영은 1919년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건조물 손괴,가택침입 손해,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5. 31)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8. 1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4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346~13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