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작은 장터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서울에 머물렀던 김복현(金福鉉)이 주도했다. 3월 6일 김복현·김강(金剛) 등은 숭일학교(崇一學校), 수피아여학교(須比亞女學校) 등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하기로 협의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송광춘은 이미 정두범(鄭斗凡) 등에게서 “광주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된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만세운동 당일날 최병준에게서 만세운동에 참여을 권유받았다. 「독립선언서」 약 20여 장과 함께 “송흥진의 지휘를 기다려 행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송광춘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만세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시위 군중은 여세를 몰아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등 일본 관공서를 다니며 한국 독립을 외쳤다.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했다.
송광춘은 3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했다.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7, 5. 4)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