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황해 송화(松禾) 사람이다.
1919년 3월 12일 황해도 송화군 송화읍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송화군에서는 3월 12일 천도교인들에 의해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날 아침부터 송화읍·상리면(上里面)·진풍면(眞風面) 등 각처의 천도교인들이 읍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전 10시경에는 약 200명이 헌병분견대 앞에 모이게 되었다. 이에 손응규는 장병국(張炳國)·조종목(趙鍾穆) 등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군중들도 여기에 호응하였다.
시위대열은 시가지를 행진하고 다시 헌병분견대 앞에 모였는데 그 수는 배로 증가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헌병들은 무기로 위협하며 해산을 강요하였지만 군중들은 계속해서 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자 헌병들은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흥분한 군중들은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여기에 항거하였다. 그러나 헌병의 무기를 당할 수 없었던 시위대열은 10여 명의 부상자를 내고 무너졌으며, 10여 명이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손응규도 붙잡혔는데,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732面
- 每日申報(1919. 4. 20)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7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