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40년 3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비밀결사 죽마계(竹馬楔)에 가입하고, 1941년 서울에서 독립운동자금 모집 사업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해방 직전 옥중 순국하였다.
1937년 4월 도쿄에서 메시로상업학교(目白商業學校)를 거쳐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專門部) 법과에 입학하여 1940년 3월 졸업하였다. 1940년 3월 9일 도쿄에서 이해룡(李海龍)ㆍ안종식(安鍾植)ㆍ안병익(安秉翊)ㆍ이봉하(李鳳夏)ㆍ김사복(金思宓) 등이 죽마계를 조직하자, 구철회(具喆會)와 함께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죽마계에 가입하고 계장(楔長)으로 선임되었다.
1940년 3월 13일 안종식ㆍ안병익의 졸업 귀국 송별회에서 죽마계원들과 긴밀한 연락과 목적 수행에 매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귀국 후 1940년 7월 서울 정릉(貞陵)에서 이창덕(李昌德) 등 죽마계원 5명과 만나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1941년 4월 죽마계원 6명과 서울 청량리 청량사(淸凉寺)에서 제1회 임시총회를 열고 도쿄에는 연구본부, 서울에는 사업부를 설치할 것을 결의하고, 김사복을 연구부 책임자, 안병익을 사업부 책임자로 선임하였다. 이때 안종식 등과 함께 사업부 부원으로 배치되어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노력하였다.
1941년 8월 9~10일경 일본 경시청(警視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42년 3월 17일 송치되었다. 1942년 11월 9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東京刑事地方裁判所)에서 예심종결 결정을 받고 공판에 회부되었다. 1943년 3월 20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안종식 등과 함께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해방을 앞두고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3권 797~799면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編, 1975) 제4-2권 757, 842~845, 977, 1198~1203면, 제5권 59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별집 제3집 340~348, 74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081~1083, 1247~1250면
- 昭和特高彈壓史(高麗書林, 1986) 제7권 243~248면
- 경향신문(1947.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