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1984
성명
한자 孫公璘
이명 孫爀, 孫赫, 孫公麟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18 훈격 애족장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같은 달 14일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음.
1922년 10월 러시아 베르흐네우진스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통합대회에 참석하고, 1927년 이후 서울에서 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 집행위원(執行委員), 경성무산청년회(京城無産靑年會) 상무위원(常務委員), 신간회(新幹會) 경성지회(京城支會) 간부 등으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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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서울 중앙학교(中央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통(鍾路通)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같은 달 14일 같은 학교생 이남두(李南斗)로부터 서울에서의 독립만세 시위운동 기사 등이 실린 『독립신문』 60매를 받아, 적선동(積善洞)과 체부동(體府洞) 등의 주택에 배포하거나 행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해 5월 6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즉시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달 30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9월 23일로 감형되어, 같은 해 4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1927년 2월 7일 칙령(勅令) 제11호에 의거하여 사면되었다.

1921년 7월 조선학생대회에서 주최한 지방순회강연단(地方巡廻講演團)의 제2단에 연설자로 참여하였다. 조선학생대회는 1920년 5월 조선학생의 친목과 단결 도모, 조선물산의 장려 및 지방열 타파 등을 목적으로 조직된 전국적인 학생단체로서, 전국에서 회원이 20,000명에 달하였다. 1921년 8월 2일 전라남도(全羅南道) 나주군(羅州郡)에서 「동정(同情)과 사활(死活)」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던 도중, 손공린은 ‘치안 방해’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나주경찰서(羅州警察署)에서 구류 14일을 즉결(卽決)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1월, 미국의 워싱턴회의에 반대해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極東民族大會)에 조선학생대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원래는 이 대회가 워싱턴회의와 같은 시기인 1921년 11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서 개최 예정이었기 때문에, 동지들과 함께 이르쿠츠크를 거쳐 모스크바로 갔다. 1922년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러시아 베르흐네우진스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통합대회에 경기도 위원회 소속으로 참석하였다.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활동하고 12월에 서울로 돌아왔다.

1925년 9월 20일 ‘조선의 산업 및 경제·정치적 혁명’에 주안점을 두고 창립된 조선노동당에서 간부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한때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간 것으로 보이며, 1926년 9월 말 도쿄에서 『광선(光線)』이라는 잡지를 발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1916년 5월 1일 창간된 『광선』은 사회주의 계통의 시사잡지(時事雜誌)로서 국내에도 유통되었다.

1927년 1월 19일 조선노동당에서 「정우회(正友會) 선언」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새로 간부진을 선임할 때 문부(文部) 담당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일 조선노동당의 메이데이 기념강연에서 강연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달 26일 이남두의 후임으로 경성무산청년회 상무위원 및 연구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당시 잡지 『부녀세계(婦女世界)』 기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이후 손공린은 조선노동당을 대표하여 신간회(新幹會) 경성지회(京城支會)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1929년 1월 제3회 임시대회에서는 간사후보자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1929년 4월 조선상공영화뉴스사(朝鮮商工映畵뉴스社)를 창립하여 영화 제작 등을 추진했으며, 그 산하에 ‘남선활동사진촬영대(南鮮活動寫眞撮影隊)’를 조직해 지방을 순례하며 촬영하였다. 1930년에는 동아영화뉴스사를 만들어 시사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부산(釜山)으로 내려가 『상공시보(商工時報)』 경남지사장(慶南支社長)을 역임했으며, 1933년경 한때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등을 오가며 광고를 모집하다가 고령경찰서(高靈警察署)에 체포되기도 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5. 6)
  •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19. 5. 30)
  • 판결문(고등법원:1919. 7. 5)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1. 25, 4. 12, 4. 29, 1929. 7. 14, 1930. 9. 7, 1933. 8. 13)
  • 중외일보(中外日報)(1929. 4. 15)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7. 10, 7. 26~27, 7. 29, 8. 1, 8. 6, 8. 10)
  • 검찰행정사무(檢察行政事務)에 관한 기록(1)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만주(在滿洲)의 부(部)(38)
  • 사상문제(思想問題)에 관한 조사서류(調査書類)(2), (3), (6)
  • 신문지요람(新聞紙要覽)(국사편찬위원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226~227면
  • 조선문제자료총서(朝鮮問題資料叢書)(박경식 편, 1989) 11권 186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97) 제35권 17, 22, 28, 34~35, 51면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국가보훈처, 2012) 5권 25면
  • 극동민족대회와 조선대표단(임경석, 역사와 현실 32호, 1999) 4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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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손공린 孫爀, 孫赫, 孫公麟 함남 북청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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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년 경성지방법원 1919-05-06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보안법위반 공소 기각 경성복심법원 1919-05-30 국가기록원
3 판결문 보안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 1919-07-05 국가기록원
4 인물카드 보안법위반 징역1년 경성복심법원 1919-05-03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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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서울현충원(위패) 서울특별시 동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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