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8일 경남 창원군 진전면(鎭田面) 고현리(古縣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시위운동은 서울에서 3월 1일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귀향한 변상태(卞相泰)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 결과 3월 28일 고현시장 즉 진전면 오서리(五西里)의 장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이때 서정규도 독립만세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하고 시위준비를 도왔다. 이들은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 1,000여 매와 선전 격문을 제작하였다.
거사일인 3월 28일 오후 1시경 권영대가 시장 중앙의 임시 단상에 올라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이에 5∼600명의 장꾼들이 호응하여 만세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였다. 진동(鎭東)의 일본군 주재소에서는 마산 일본군 중포대대의 지원을 받아 총칼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일시 피신한 변상태 등은 다시 진전면(鎭田面)·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의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4월 3일 오전 9시, 수천 여명의 시위군중이 양촌리 냇가에 집결하였다. 변상섭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변상태가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시위군중은 진동면의 헌병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는 헌병주재소에 투석하였을 뿐 아니라 주재소 경계원과 보조원을 구타하였다. 그때 마산(馬山)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군 야포대대 군인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이 발포로 8명이 순국하고 22명이 부상하였으며 군중들은 해산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9월 2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정치관련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史(金承學) 上卷 219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7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43∼245面
- 慶南獨立運動小史(卞志燮, 1966) 上卷 176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