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31일 의주군 수진면 수구진(水口鎭)에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700명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헌병들이 총을 쏘아 해산시켰다. 4월 1일 수진면 이화동(梨花洞)에 거주하던 백원억은 표득복·백낙현 등이 ‘현재의 만세사건에 대하여 본 마을에서도 참가하려 하니 여러 사람에게 이를 일일이 통지하라’고 하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 통지하였다. 이어 이화동 주민 400여 명과 함께 운천동(雲川洞) 수진면사무소에 몰려가 만세운동을 벌였다. 밤이 되자 6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 옆의 도축장과 친일 한국인 가옥 1채를 불태웠다. 의주로부터 군인 10명이 출동하여 헌병과 함께 총을 쏘아 시위를 진압했다. 4월 2일 오후에도 만세 시위가 벌어져 2,000명 군중이 수진면사무소에 몰려와 연설하고 만세를 불렀다. 출동한 헌병에게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이러한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된 백원억은 이른바 ‘소요(騷擾)·방화(放火)·살인미수(殺人未遂)’로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8일 칙령 제120호에 의거 징역 9월로 감형되었고, 1920년 6월 2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5집 872, 8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