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4월 3일 차한걸(車漢傑) 등 30여 명의 주도 아래 주민 약 2,500명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장안면장 김현묵(金賢黙)과 함께 선두에 서서 ‘단순하게 만세를 연호한다고 해서 조선 독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사나 병졸 등이 발포해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결코 퇴각하지 말고, 시신을 메고 전진하고 서로 일치 협력하여 저항해야 한다’며 만세 군중을 독려해 면사무소 및 화수경찰관주재소로 이끌었다. 군중들은 장안과 우정면사무소 유리창 및 서류상자・책상・의자 등 집기들을 부수고 장부와 서류 등을 불태웠다. 또한 화수경찰관주재소를 방화해 전소시켰고, 이 와중에 일본인 순사가 죽었다. 이후 3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수원경찰서에서 ‘소요’ 및 ‘살인 방화’로 수사를 받고, 1919년 6월 27일 서대문감옥에 구류되었다. 8월 7일 체포된 52명에 대한 예심이 종결됨에 따라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8. 8)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4) 제19권 281~2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