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0년 8월 경상남도 진주군의 진주농업학교 2학년에 다녔다. 그는 일본 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동급생들을 대상으로 활동 자금을 모았다. 이 자금으로 태극기와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격문 3백여 장을 제작했다. 박하두 등은 8월 31일 농업학교와 재판소 등에서 ‘선언서’를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뜻을 모았다.
박학두의 ‘독립만세운동’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다. 정보가 거사 전날인 8월 30일 일본 경찰에 누설되었던 것이다.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0월 1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925년 진주청년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26년 사상단체인 일강당(一强黨)의 간사를 맡았다. 그는 출옥 이후에도 진주지역에서 사회운동 단체에 참여했던 것이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0. 9. 9, 1925. 10. 15, 1926. 12. 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권 739~7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