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4월 평북 창성군(昌城郡) 창성읍내(昌城邑內)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헌병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창성읍내는 3ㆍ1운동 거사 이전에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닿아 있었다. 당시 읍내 교회의 장로 강제희(康濟羲)는 창성 거사를 책임지기로 이승훈과 약속하였다. 그는 교회의 중진 인물인 동시에 사업계에서도 유력하여 읍내에 본점, 삭주군(朔州郡)과 전창면(田倉面)에 지점을 두고 상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강 장로는 전창면에 도착하자 '결산 중 외인 출입 사절'이라는 표찰을 붙이고 문을 닫은 후 전창교회 집사 박찬소, 권찰 강정식(康貞植)ㆍ황대붕, 전창지점 주무(主務) 전봉재(全鳳梓) 등과 긴급 회동하여 창성군에서의 거사 계획을 수립하고 1919년 4월 1일 오전 10시 서문 밖 들판에 모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1일 오전 10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강제희가 돌각담에 올라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후 시내로 행진하자, 일본군 50여 명과 헌병이 합세하여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전창교회 박찬소와 권찰 강정식이 총탄에 맞아 쓰러져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69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174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1권 491, 545, 5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