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전라북도 전구군 전주면 신흥학교(新興學校),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학생들과 종교 관계자 약 150명은 1919년 3월 13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시위 군중은 전주우편국(全州郵便局) 등 시가지를 행진했다. 만세운동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전주면 완산교(完山橋) 주변에서 일어났다. 3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박찬문도 14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박찬문 등 시위대는 식산은행(殖産銀行), 전주우편국(全州郵便局) 등 일본 관공서로 가서 독립을 절규했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일본 당국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경찰, 헌병, 소방조 등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탄압했다.
박찬문은 여기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全州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했지만 7월 28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월 29일 출옥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7. 2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3권 495~49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