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북 대구(大邱)에서 이만집(李萬集) 등과 학생들을 동원하는 등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인 거사를 위해 경상도 연락 책임을 맡은 이갑성(李甲成)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용상(李容祥)을 통해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대구 기독교계 유지 이만집에게 전하였다. 2일 선언서를 전달받은 이만집은 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과 함께 장날인 8일 오후 3시를 기하여 서문(西門) 밖 시장에서 거사를 일으키기로 합의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거사계획을 전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박제원은 김무생과 함께 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로 가서 만세시위에 여학생들도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거사일인 8일 오후 3시경 대구고보생 200여 명이 서문 밖 시장에 나타나자, 일본군 헌병 기마대가 제지하여 격투를 벌였다. 이때 계성학교 학생들이 헌병 기마대를 물리치고는 만세시위를 벌이다 3월 10일 재차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이 시위의 주동인물로 체포된 박제원은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5.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65, 1269~127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349, 352, 356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21)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