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19년 3월 10일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서흥군 도면(道面) 두무리(杜茂里) 개신교 전교사 김성항(金成恒)이 평양에서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받아갖고 오자, 박이도는 동지들과 3월 10일 오전에 능리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 헌병대에 계획이 탄로나 9일 저녁에 주도자 2명이 체포되고, 일본 헌병대의 감시로 8일 오전에 교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이도는 교인들을 이끌고 교회 앞에서 능리로 진출하려다가 서흥헌병주재소의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3월 10일 오후 4시 경에 능리 장터에서 2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체포된 박이도는 1919년 5월 1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고, 1919년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그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59~261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1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646~6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