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박유석은 경북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해 신덕(新德)경찰관주재소 및 임하면사무소를 공격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안동군 임하면의 독립만세시위는 금소동(琴韶洞)에 살던 임찬일(林燦逸)이 주도하였다. 그는 금양의숙(錦陽義塾)에 수학하다가 고종(高宗) 인산(因山)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 만세시위에 참가한 후 독립선언서 수십매를 입수하여 3일 후 귀향하였다. 귀향 즉시 박유석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을 규합하여 거사를 밀의하였다. 이들은 3월 16일 길안(吉安) 장날에 거사를 단행하려다가 계획을 변경하여 3월 21일 금소동에서 의거하여 신덕동(新德洞)까지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날 모여든 군중들은 만세를 외치며 주재소와 면사무소가 있는 신덕리를 향하여 전진하였다. 신덕리 경찰관주재소를 포위한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부르자 경찰이 발포하였고 희생자가 나왔다. 격분한 군중들은 주재소에 투석하여 유리창과 문 등을 파괴하고 곤봉을 휘두르면서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주재소를 점거한 군중들은 기물을 파괴하였다. 그후 다시 면사무소로 몰려가 벽과 기물을 파괴하였다. 다음날 군경은 금소동에서 주동 인물들을 검거하였다.
이 시위로 4월 11일 체포된 박유석은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7. 4)·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9. 19)
- 受刑人名簿·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355, 1356면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