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조극환(曺克煥) 등은 1919년 3월 25~31일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최민섭(崔旼燮) 등 지역유력자를 규합했다. 4월 6일 박규상(朴奎相) 등에게 구림리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4월 7~9일 군서면사무소에서 「독립선언서」와 「독립가」 등을 인쇄했다. 4월 10일 오전 9시 박규상이 비상나팔을 불어 마을 주민 모아 구림공립보통학교로 갔다.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학생들은 박규상의 선창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놀란 학교 직원들은 학생들을 교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때 박성집은 조희도(曺喜道)·정상조(鄭相祚) 등과 함께 교실로 들어가서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를 이끌었다. 박성집과 학생들은 ‘대한독립’을 외치며 면사무소로 갔다. 이날 시위는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박성집은 이날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학생들의 시위참여를 이끌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이른바 ‘출판법(出版法) 및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태(台)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1919. 5.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54~1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