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평양 사립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4월경 미국인 선교사 모페트(Moffett, S. A) 등을 비롯해 숭실중학 학생 이인선(李仁善) 및 교사 김영순(金永淳), 숭실대학(崇實大學) 학생 김태술(金泰述)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참여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3.1운동 당시 평양에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행한 이보식(李輔植) 등과도 관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월 4~5일 평양경찰서(平壤警察署)가 선교사 7명의 집을 수색했다. 평양부 신양리(新陽里)에 있는 모페트의 집에서 김태술 등 10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0년 5월 이근배(李根培) 등이 주도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근배는 3.1운동 당시 평양고등보통학교(平壤高等普通學校) 학생으로서 ‘만세시위운동’과 『독립신문』 배포 등을 주도하다가 도피했다. 1920년 1월 20일경 평양으로 돌아와 최경선(崔慶善)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보낼 것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경고문(警告文)」 수백 매 등을 제작 배포하고, 평양부 상수리(上需里)에 있는 김정상(金正商)의 집, 죽전리(竹典里)에 있는 이정오(李貞梧)의 집 그리고 강동군(江東郡) 원탄면(元灘面) 이정호(李庭浩)의 집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4월 14일 이래 최경선·이경선 등이 강서경찰서(江西警察署)에, 도피하던 이근배와 한부선(韓富善) 등도 5월 3일경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박기복도 김윤기(金潤基)·최인식(崔仁寔)·양제은(楊濟殷)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8, 4. 12, 1920. 3. 27, 5. 19~20)
- 독립신문(獨立新聞)(1920. 5. 29)
- 동아일보(東亞日報)(1920. 8. 10, 1921. 4. 18, 6. 12, 6. 26, 1922. 1. 11)
- 회원명부(會員名簿)(숭실교우회, 1938. 9) 81, 1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