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함북 청진부(淸津府) 신암동(新岩洞)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청진의 만세시위 추진은 윤병후(尹炳厚)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이를 눈치챈 일본 헌병의 단속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장채남(張彩男),서성칠(徐星七),윤학송(尹學松) 등도 3월 25일 거사를 일으키기 위해 '조선민족독립단 청진'의 명의로 된 조선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24일 새벽 시내 곳곳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였으나, 일본 헌병들이 태극기와 선언서를 압수하며 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는 바람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후 장채남 등 4인과 민기수는 재차 거사를 추진하였다. 이들은 3월 31일 신암동에서 거사를 하기로 정하였다. 31일 정오, 신암동에 400여 명이 모이자, 윤병후를 선두로 만세시위에 돌입하였다. 1시간 30분간 지속된 시위는 윤병후,민기수 등 주도인물 6명이 체포되자, 일단 해산되었다. 그러나 군중 일부에서 주동 인물 석방을 요구하면사 재차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300여 명이 다시 모여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다시 해산되었다.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민기수는 1919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5. 24)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2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48~104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41-7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