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4일 황해도 곡산군 곡산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조선독립선언서」를 보게 되었고 그 내용에 감화되어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만세를 외치며 곡산 읍내를 행진하였으며 헌병 분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체포되고 말았다.
1921년 3월 29일 곡산군 오농리 김창호의 집에서 의맹단 분단장 문빈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일본 경찰에 쫓기고 있던 문빈의 사정을 듣고 그의 은신을 도왔다. 4월 1일부터 김공성의 방에서 3일, 백찬성의 방에서 3일 동안 지낼 수 있게 지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곡산군에서의 시위와 관련하여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았다. 1920년 2월 27일 2심에서도 경성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7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또한 문빈의 은신을 도왔던 일과 관련하여 1921년 5월 24일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범인장닉’ 혐의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11. 6)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0. 2. 2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9. 17, 11. 8)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7. 5)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0) 제13권 155~158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1) 제15권 36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3) 제16권 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