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평남 용천군(龍川郡) 양하면(楊下面) 양시(楊市)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용천군에서 제일 먼저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은 양시였다. 3월 4일 정오부터 시내에서 5,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천도교인은 선언서를 살포하고, 기독교인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가지를 질서 정연하게 행진하였다. 밤 9시경에는 6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재개, 손에 등불을 들고 다시 행진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20여 명을 체포했다.
문종언은 이날의 만세시위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슬프다, 조선민족이여! 죄 없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하고,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하니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만세 한번 부른 것이 어찌 죄가 되는가"라고 하며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6. 2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842, 8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