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 3월 26일 전남 함평(咸平)에서 조사현(曺士鉉)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사현은 전국 각지에서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한다는 것을 듣고, 함평에서도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동년 3월 19일 함평공립보통학교(咸平公立普通學校) 기숙사에 찾아가 송대호(宋大浩), 정기연(鄭琪衍) 등에게 학생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이에 찬동하고 3월 26일 함평공립보통학교 졸업식 때에 만세운동을 결행할 것을 협의하였다.
이후 송대호 등은 모순기에게 그 계획을 알렸고, 그는 흔쾌히 찬동하여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 수 십장을 만들어 가마니에 넣어 기숙사에 숨겨 두었다. 거사 당일 졸업식 거행 후 송대호 등은 등교한 학생 등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어서 학생 등 30여 명을 이끌고 함평시장에 이르러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이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모여든 군중들은 함평읍 내교리(內橋里)에서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모순기는 직접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독립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20. 4. 26)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0. 5. 3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5.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