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영덕군의 만세운동 중 영해(寧海)·창수(蒼水)·병곡(柄谷)의 의거는 가장 격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영해읍 장날에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창수면의 유지들도 이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에 참여하려고 영해읍으로 향하던 중 시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창수동(蒼水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창수동에서는 도로공사로 전답을 강제 수용당하여 일제에 불평을 가진 동민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이에 호응한 시위대가 1백여 명이 되었다. 이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창수동주재소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4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주재소를 점거한 후 청사에 부속된 유치장을 부수고 총기류, 대검류 기타 서류를 파기하였다. 독립만세의 열띤 시위를 전개한 동민들은 오후 7시 무렵 철수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남출이는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손괴·기물손괴·공문서 훼기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9. 30)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7. 1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2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377~13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