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유구시장(維鳩市場)에서 황병주(黃秉周)는 주민 30여명에게 만세운동을 권유하고 모자를 벗어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여기에 시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계속 가담하여 시위군중은 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일본 경찰은 황병주를 경찰관주재소로 끌고 갔다. 그러자 시위군중이 황병주의 석방을 요구하며 돌을 던지고 막대기를 휘둘러 주재소를 공격했다.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과 보병 수비대에 의해 32명이 체포되었다.
이에 분개한 김희봉은 3월 17일 오후 5시경 공주면 공주시장에서 약 1,000명의 군중과 상인들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고 본인도 조선독립만세를 계속 외쳤다.
이로 인해 체포된 김희봉은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1919년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19년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1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