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20일 경남 합천군(陜川郡) 읍내 및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이끌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경남 합천에서는 1919년 3월 19일 대양면민(大陽面民)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심재기(沈載祺) 등 17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김호준은 강시만(姜時晩)ㆍ김영기(金永騏)ㆍ추용만(秋鏞滿) 등과 함께 구금자 구출 시위를 벌이기로 하고 인근 면리에 연락하여 20일 오후 7시에 합천읍에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3월 20일 오후 대양면 마정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출발에 앞서 결사대를 조직하였는데, 김호준은 김영기ㆍ심맹권(沈孟權)ㆍ손득룡(孫得龍) 등 12명과 함께 결사대원이 되어 선두에 서서 합천읍내까지 행진하였다.
오후 7시, 합천시장에는 약 400~500명의 군중이 모였다. 김호준은 시위 군중과 함께 읍내를 행진하고, 합천경찰서로 가서 심재기 등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경찰서장은 먼저 해산하면 석방을 하겠다며 해산을 종용하였다. 이에 격분한 결사대원 추용만이 태극기가 달려 있는 장대로 서장과 순사 5~6명의 머리를 공격하며 경찰서 안으로 돌진하자, 김호준도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시위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뒤따르자, 일제 경찰이 총격을 가하여 4명이 순국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김호준은 김영기ㆍ추용만ㆍ강시만과 함께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3ㆍ1運動時被殺者名簿(국가기록원 소장, 1953) 121면
- 3ㆍ1運動實錄(李龍洛, 1969) 668~67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25~327면
- 陜川郡史(합천문화원, 1995) 200~202면
- 大陽面誌(대양면지편찬위원회, 2009) 583, 587, 602면
- 부산ㆍ울산ㆍ경남 독립운동사적지(독립기념관, 2010) ⅱ 5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