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북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오수리 유지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은 천도교와 기독교측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거사일은 23일 오수리 장날이었다. 오후 2시 이기송이 시장에서 연설과 함께 만세를 선창하는 것을 신호로 시위는 전개되었다. 이에 놀란 주재소에서는 이기송을 잡아 주재소로 끌고 갔다. 그러나 오병용,이만의,이병렬(李秉烈),김일봉(金一奉) 등의 주도로 시위 군중들은 주재소를 습격하여 이기송을 구출하였다. 이어 시위대는 시장과 면사무소를 거쳐 다시 주재소를 습격하여 유치장을 부수고 감금된 사람들을 석방하였다. 이에 저녁 무렵 남원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에서 병력이 대거 출동하였다. 시위대는 일본 군경과 대치하였으나, 일본 군경의 발포로 사상자를 내고 군중은 해산되었다.
이때 김찬오도 시위 대열에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김찬오는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1919.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