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미주 (美洲)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다뉴바지방회 회장 (會長) 으로 3․1 독립선언 (獨立宣言) 을 지지하는 전문 (電文) 을 발표하고, 1919~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등에 독립운동을 위한 의연금을 지속적으로 전달하였으며, 1919년 12월 미국 (美國) 캘리포니아에서 조소앙 (趙素昻) 의 외교운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노동사회개진당 (勞動社會改進黨) 을 조직해 활동하고, 1929년 나성지방동지회 회원 (會員) 으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구미위원부 (歐美委員部) 후원활동을 전개하고, 1943년 9월 북미시보 주필 (主筆) 에 임명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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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이범영은 서울 서대문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미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다뉴바 지방회 회장으로 3,1독립선언을 지지하는 전문을 발표하고, 1919년부터 1944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 독립운동을 위한 의연금을 지속적으로 전달하였다.
1919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소앙(趙素昻)의 외교운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노동사회개진당(勞動社會改進黨)을 조직해 활동하고, 1929년 나성지방동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 박사 환영회의 개회사를 맡기도 했다. 193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후원활동을 전개하고, 1943년 9월 북미시보(北美時報) 주필로도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新韓民報(1919. 3. 13, 1919. 8.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8집 721~7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