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대전(大田)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대전에서 김창규(金昌奎)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대전에서의 만세운동은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일(因山日)인 3월 3일에 소규모로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3월 12일 장날을 이용하여 천도교도들이 일으키려다가 사전 발각된 일이 있었는데, 본격적인 것은 3월 27일 김완봉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였다.
대전 시장의 상인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천도교도들의 만세시위 계획이 사전 발각되는 것을 보면서, 3월 15일경부터 만세시위를 추진해 나갔다. 이들은 김정철(金正哲)이란 사람으로부터 독립선언서와 「국민회보」·「독립신문」 등 3백여 매를 전달받고,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
김완봉 등은 거사 당일 오후 3시경 장터로 나가 군중을 규합하고 미리 준비해 간 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129·11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