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일 경기도 한성부 서울에서 ‘조선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또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활보하는 3.1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종교계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것과 별도로 학생들도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1919년 1월 하순경 서울의 전문학교 학생들이 모임을 가진 후 여러 차례 회합을 갖고 중등학교 학생들을 규합했다. 2월 20일 승동예배당에서 제1회 학생 간부회를 개최하여 각급 학교 대표자들을 선정하고 역할을 분담했다. 2월 25일 이필주(李弼柱)의 집에서 전문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이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에 참여하는 등의 내용을 결정했다. 이어 학생들은 2월 28일에 승동예배당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 받아 시내 각처와 학교에 배포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는 한위건(韓偉健)・김형기(金炯璣)가 중심이 되어 학생들에게 만세운동 참가를 권유했다. 김영진은 같은 학교 3학년 동급생 허익원(許益元)・강학용(姜學龍)・백인제(白麟濟) 등과 함께 파고다공원에 집합한 학생, 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치고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
김영진은 만세운동 참가로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종결결정으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1920년 칙령(勅令) 제120호에 의해 형의 효력이 상실되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예심종결결정(豫審終結決定)(경성지방법원:1919. 8. 30)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