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3월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동년 3월부터 6월까지 대한국민신보(大韓國民新報)를 제작·배포하였고,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발기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선천군 조사원으로 활동하다가, 1926년 이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선천군에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약 15일간 선천경찰서에 검거·구속되었다.
1919년 3월부터 6월까지 중국 길림성(吉林省) 안동현(安東縣)에서 김하원(金河源) 등과 함께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대한국민신보라는 신문을 제작·인쇄하여 신의주(新義州)에 배포하였다. 동년 6월 안동현에서 장자일(張子一)·장재건(張在建) 등이 주도한 대한독립청년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1월에는 주현칙(朱賢則)·차균상(車均相)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 선천군 조사원으로 활동하면서 그 지역의 유력자·재산가·학교·종교 등을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이후 오정은은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1923년 봄 귀국하는 도중 로스엔젤레스에서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였다. 1926년 1월 7일 수양동우회가 성립하자 장이욱(張利郁)의 권유로 가입하였다. 선천군에서는 오정은·이영학(李英學)·박춘근(朴春根) 등이 중심이 되어, 정주(定州)의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사 이인수(李寅洙)를 반장으로 하여 수양동우회 제6반에 속하였다. 1927년 3월 개편된 수양동우회에서, 오정은은 다시 이영학·박춘근·차균상 등과 함께 흥사단 일반회원인 주현칙을 반장으로 하는 제1반에 속하였다.
1931년 봄 무렵, 오랫동안 정간되고 있었던 동우회의 기관지 『동광(東光)』의 속간 비용으로 금 1백 원을 지출하였다.
1936년 10월 17일 선천군 선천읍 천북동(川北洞)의 오순애(吳順愛)의 거처에서 안창호(安昌浩)·이영학·장이욱·주현칙·이광수(李光洙) 등과 회합하고 안창호에게서 동지 획득을 통한 동우회의 확대와 강화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1937년 6월 19일 구속되어 1941년 11월 17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7집 1203면·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2집 1284~1432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40. 8. 21)
- 國外情報(1919. 10.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2)
- 普通報 제6호(1919. 10. 2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3)
- 同友會사건 검거에 관하여(1937. 10. 28, 독립기념관 소장)
- 判決文(高等法院:1941. 7. 21)
- 判決文(高等法院:1941.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