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 김강(金剛) 등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俊)은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다. 광주면 향사리(鄕社里) 최한영 집에서 「독립선언서」 등 인쇄물 약 8,000매를 등사 인쇄했다.
당시 숭일학교 학생이었던 김영기는 최병준에게서 「독립선언서」와 「우리 2천만 동포」라는 제목의 경고문을 교부받았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만세운동은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에서 독립운동 개시 연설을 신호로 시작하였다. 김영기를 비롯한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등 학생들은 작은 장터로 행진하면서 인쇄물을 배포했다. 만세운동 군중이 광주우편국(光州郵便局)에 도착했을 때 무장 군경을 출동시켜 탄압했다.
김영기는 이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했지만,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2월 14일 출옥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5. 4)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