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에서 유연성(柳淵成)과 유동수(柳東洙)·유교희(柳敎熙)·박재식(朴載植)·이강욱(李康郁) 등이 모여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니 우리도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시위일은 장날인 3월 21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각각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권유했다. 3월 21일 오후 2시가 되자 500여 명의 군중이 편항시장(鞭巷市場)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행진하였다.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유연성을 체포해가자 군중들은 편항주재소(鞭巷駐在所)로 달려가 유연성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일본 경찰이 위협사격을 가하자 군중들의 분노도 폭발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러 주재소와 순사의 숙사를 파괴하고 공문서를 파기하였다. 여세를 몰아 임동면사무소까지 행진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문서와 비품을 파기하는 등 새벽까지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김석이는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과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騷擾)·건조물손괴(損壞)·가택침입·상해(傷害)·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19. 5. 3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