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3월 1일 남본정 교회에서 시작된 해주군의 3.1운동은 4월까지 계속되었다. 4월 3일 취야 장날을 맞아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가좌면 취야리는 옹진군 마산면과 장연군 모곡면 방면에서 해주로 들어가는 큰길이 만나는 곳으로 교통이 번잡하고 시장이 번화한 곳이었다.
이날 오후 2시경 예정대로 600여 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군중과 장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군중은 5,000여 명을 헤아렸고, 그들은 면사무소와 주재소로 향하였다. 경찰과 대치 상황이 벌어지면서 일부 청년들이 주재소에 들어가 전화선을 끊고 기물을 파괴했다. 결국 일본 경찰이 발포를 시작하면서 시위군중은 흩어지고 천도교인 32명과 기독교인 25명이 체포되었다.
김봉길은 이날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9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19년 10월 25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10. 25)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183~1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