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함남 북청군(北靑郡) 신창면(新昌面) 신창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북청에서는 1919년 3월 8일 처음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오전 9시 읍내의 천도교인과 학생 250여 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들어갔다. 3월 10일 김병해는 북청군 신창면 신창리 천도교구당에서 조인환(趙寅煥)ㆍ안용운(安用云)ㆍ이정환(李廷煥)ㆍ이대희(李垈熙)ㆍ조택승(曹宅承)등과 함께 3월 13일 신창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3월 13일이 되자 김병해는 신창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조선국 자주 독립 만세'라고 쓴 기(旗)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들은 4시간여 시위를 마치고 해산하였으나, 밤부터 시작된 검거에서 조인환을 비롯한 주도 인물들이 체포되었다.
김병해는 1919년 5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소했으나, 7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같은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19. 7. 16)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9. 25)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08, 7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019~10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