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평남 중화군(中和郡) 상원(祥原) 신읍(新邑)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상원면 천도교 교구실에서 중화대교구 전교사 유영환(劉永煥)이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의하자, 김동식(金東植)과 함께 거사에 찬동하였다. 다음 날 2일 아침 200여 명의 천도교인과 함께 천도교구실에 모인 김병준은 김동식의 만세 선창에 따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때 출동한 경찰들이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김병준 등은 경찰을 포위하여 소지한 칼을 빼앗고 구타하였다. 이어 김동식과 함께 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주재소로 몰아넣었다. 이때 시위 군중들이 총기와 탄약 등을 빼앗고 경찰서장을 포박,납치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평양 경무부(警務部)에서 병력을 급파하여 김병준을 비롯한 시위군중 39명을 체포하였다.
이로 인해 김병준은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31)
- 每日申報(1919. 6.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804~805면, 제14집 9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