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문화면(文化面) 문화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계획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초,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은 만세운동을 비밀리 준비하면서 11일 문화면 장날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김명성은 문창규(文昌奎),이영희(李泳禧),최훈석 등과 태극기 제작과 각지에 연락을 취하는 등 준비를 마쳤다. 11일 오전 11시경,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300여 명의 군중이 읍내 장터인 동각리(東閣里)로 모이자, 방형묵(方亨黙),강영탁(康榮鐸) 등은 앞에 나가 대한 독립을 선언한 다음, 태극기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호응한 1,000여 명의 군중은 시가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헌병의 무력 저지로 군중들은 흩어지고 일부 지도자들이 헌병주재소로 잡혀갔다. 이튿날 아침 500여 명의 군중이 다시 헌병주재소로 찾아가 일제의 탄압을 규탄하고 구속자 석방을 강하게 요구한 끝에 주재소장과 담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인 주재소장은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군중들을 무마해 해산시켰다.
이 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체포된 김명성은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84~2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53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