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2일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황주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서 이날 오후 2시경 수백 명의 천도교도들과 함께 황주읍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시위대열이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 일경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제지하며 김병식(金炳植) 등 몇몇 주도자를 연행하였다. 분노한 군중들은 경찰서로 몰려 들어가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유리창을 부수는 등 격렬히 대항하였다. 다시 읍내로 돌아온 시위군중들은 예수교 예배당 앞에서 대열을 정돈하고 일제히 만세를 외쳤는데, 이때 예수교인들도 동참하여 인원은 더욱 증가하였다. 시위대열은 계속 독립만세를 연호하고 애국가를 부르면서 시가행진을 하였는데, 시중은 온통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경찰과 소방조(消防組)까지 동원하여 감시와 순찰을 엄중히 하였다. 오후 5시경, 천도교도들이 교구실로 들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일경이 교구실로 들이닥쳐 천도교도와 시위 참가자들을 무차별 연행하였다.
그는 이날 체포되어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는데, 상고 취지서에서 “나는 한일합방 이래 조선 독립을 연면(連綿)히 포회(抱懷)하고 있던 중, 민족자결과 영토 해제 소식에 접하여 3월 2일 황주 군민과 함께 황주 읍내를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던 중 체포되었다”고 하여 독립을 갈망하였음을 당당히 밝혔다.
결국 이해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42년에는 고향인 황주군 구성면(九聖面) 화동리(和洞里)에 사립화성학원(私立和聖學院, 해방 이후 和洞人民學校)을 설립하였고, 천도교 화동교구(和洞敎區)의 교구장으로 재임하는 등 교육과 종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255∼257면
- 黃州郡誌(黃州郡誌編纂委員會, 1989) 1069∼10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634∼646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判決文(高等法院, 1919.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