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10년
3.
4. 1924년 7월 2일
※
-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충북 진천(鎭川) 사람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2년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7년 대한제국 육군 정위(正尉)로 강계진위대(江界鎭衛隊)에서 활약하다가 동년 7월 군대가 해산되자 낙향하여 후진육성에 진력하는 한편, 1909년에는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 가입하여 안희제(安熙濟)·이원식(李元植)·윤세복(尹世復)·서상일(徐相日)·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되자 만주로 망명, 남북만주, 북경(北京), 상해(上海), 서백리아(西伯利亞) 등을 전전하며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에는 동삼성(東三省)의 지도자로서 여 준(呂準)·정안립(鄭安立)·박성태(朴性泰)·박찬익(朴贊翊)·정 신(鄭信)·김동삼(金東三)·손일민(孫逸民)·김좌진(金佐鎭)·서 일(徐一) 등 38인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19년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참여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서 오광선(吳光鮮)·이범석(李範奭)·김경천(金敬天) 등과 함께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1922년에는 의군부·광복단·광한단·흥업단 등 대소 8개 단체가 합류하여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였으며, 1924년에는 그 사령관에 취임하여 양세봉(梁世奉)·문학빈(文學斌)·심용준(沈龍俊)·박응백(朴應伯) 등과 함께 무장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그러던 중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마적 300여명이 통의부사령부 소재지인 왕청문 이도구(旺淸門二道溝)를 습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1924년 7월 부하들을 이도구 높은 산에 매복시킨 후 그들과 결전을 행하였으나, 탄환이 떨어져 전사하였다.
그는 별호를 동천(東川)이라 하여 이청천(李靑天)·김경천(金擎天)과 함께 독립군 인재의 삼천(三天)으로 불리던 지휘관이었으나 아깝게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108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1·255·256·262·467·517면
- 동아일보(1924. 7. 30, 8. 10)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87·293·6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956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53·78·128·13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7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