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남 고원군(高原郡) 내면(內面) 가평리(加平里) 사람이다. 1919년 3월 중순 기독교 장로파 신자인 유관흥(劉寬興)은 고원읍에 시장이 열리는 3월 19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태극기를 300매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유관흥은 3월 19일 고원군 내면 석연리(石淵里)의 덕지시장(德池市場)에서 군중에게 “금일 기회에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는 취지로 연설을 하고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김대복은 유관흥의 독립연설에 찬동하여 유관흥이 나누어 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20~30명의 군중과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대복은 1919년 4월 18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19년 5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681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5. 12)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985~9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