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대동군은 평양과 거리가 가까워 평양 시내에서 3.1만세시위가 발발하자 그 소식이 곧바로 전파되었다. 3월 2일 대보면에서는 평양에서 독립시위를 위해 파견된 숭실학교 학생이 대평외리 기독교 계통의 취명학교 교사와 의논한 후 학생들을 모아놓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3일에는 400여 명이, 5일에는 500여 명이 모여서 면사무소 앞으로 몰려가자 시위군중의 위세에 눌린 면장과 직원들이 같이 ‘독립만세’를 부르기도 하였다. 3월 4일에는 율리면 기독교 학교 교사의 주도하에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율리면 장천리에서도 밤에 동민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광순은 3월 5일 오후 7시경 마을 사람 10여 인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 후 강화회의를 열어 민족자결문제로 조선에 독립권을 부여하고 독립시키는데 대해 다른 곳에서도 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우리 동네도 만세를 부르고 축하하자”며 태극기 1개를 종이에 그리고 동민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김광순은 3월 5일 율리면 유신리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상고하였다. 1919년 5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9년 12월 11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5. 1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25~227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