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1919년 3월 31일 신암동(新岩洞)에서 약 400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어 4월 1일 정오경 신암동에서 2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내를 행진하였다. 포항동에서는 3월 31일 오후 7시경 김관하가 박원후(朴垣厚)·안창희(安昌熙)와 모여 4월 1일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계획하고 태극기 50여 개를 제작했다.
이들은 4월 1일 오후 1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모여든 다수의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었다. 이어 약 200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보통학교로 이동하여 만세를 부르고 다시 포항동 시내로 진출했다. 이때 일본 경찰들이 출동해 군중을 저지하고 해산을 강요하며, 시위 주도 인사 10명을 체포하였다. 시위 군중 가운데 약 100명은 부령군(富寧郡) 청암면(靑岩面) 도동(道洞) 면사무소 부근까지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체포된 김관하는 1919년 5월 10일 경성복심법원과 1919년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칙령 제120호에 따라 징역 10월 20일형으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6. 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5집 1047~10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