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가 발발한 직후 겸이포에서도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3일 밤 천도교도가 겸이포 장로파 교회당에서 기독교도에게 함께 만세시위를 할 것을 제안했다. 협의가 되지 않자 천도교도 30여 명은 오후 9시 반경 교회를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안태직(安泰稷)과 김정하(金貞夏)가 태극기를 가지고 와서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며 동지를 규합했다. 김건조는 미쓰비시 제철소 제강과(製鋼課) 도면계(圖面係)에서 근무하며 노동자 등을 비롯해 약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일대를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에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10여 명과 체포되었다.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였으나 5월 31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상고하였으나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3. 14)
- 1919년 소요사건에 관한 도장관보고철 7(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57~258, 33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집 632~6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