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9년 박병익(朴炳翼)을 도와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의 지부로서 선천청년단(宣川靑年團)을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군자금모집 활동을 펴는 한편 기관지 ≪흙과 적≫을 발간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중 동년 11월경 일경에 붙잡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1921년 1월 21일에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신의주지청(新義州支廳)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자신의 재산으로 왕림학원(王林學院)을 설립하여 애국청년을 양성하였으며 반일투사혁명위원회(反日鬪士革命委員會)를 조직하여 지하운동을 하던 중 붙잡혀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