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 함남 함흥군 함흥면 함흥장날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함흥의 만세시위는 영신학교(永信學校)와 영생학교 교사 및 학생들과 교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이들은 만세시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집행위원 등을 선출하였으며, 거사일을 함흥면 장날인 3월 3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투옥자의 생활비·변호인 선정 등의 문제를 분담하였다. 당시 영생학교에 재학하던 김면오는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의 제작·등사에 참가하였다.
김면오는 집행위원으로 3월 2일에는 동지들과 함께 조영신(趙永信)이 원산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3,000매나 등사하고, 태극기 18매를 제작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주민 동원에도 노력하여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만세시위의 소식을 알렸다.
이같은 계획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3월 2일 시민들의 산발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일경은 폭압적인 탄압을 가하는 한편 2일 저녁과 3일에 걸쳐 함흥 시내 일대에 대대적으로 예비 검속을 실시함으로써 시위 계획에 참가한 많은 인사들이 붙잡히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7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009∼101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