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일에 황해도 해주(海州)·옹진(甕津)·사리원(沙里院)·수안(遂安)·서흥(瑞興)·연백(延白)·황주(黃州) 등지에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황주군에도 3월 1일 황주군 황주면(黃州面) 천도교구실(天道敎區室)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어 즉시 군내 천도교인들에게 배포되었다. 배포 도중 일부가 황주경찰서에 발각되기도 하였지만, 3월 2일 오후 2시경 천도교인 수백 명은 황주면 남천리(南川里) 시장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시장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사람들은 시장을 행진하여 황주경찰서 앞으로 나아갔다. 경찰이 두 명을 체포해 끌고 가자 시위군중은 경찰서 구내로 들어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강력히 항의하였다. 이들은 돌을 던져 경찰서 유리창을 모조리 깨뜨렸다. 황주경찰서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교회당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만세운동을 펼치던 권만일은 오후 5시경 교인들과 천도교구실로 돌아와 휴식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권만일은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소요(騷擾),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징역 1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7. 1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55~2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