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경북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칠곡에서의 만세운동은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선언서 20매를 이 마을의 유지 이상백에게 전달하면서 추진되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3월 11일에는 이상백의 집에서 태극기와 선언서를 제작·인쇄하였다. 권경보는 거사 당일인 3월 12일 밤 8시에 3백여 명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일제의 탄압으로 중심 인물 일부가 붙잡혀 시위대가 해산하였으나, 권경보 등에 의해 만세시위는 다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권경보는 3월 14일 오후 9시에 주민 2백여 명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318∼1321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